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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살아있는 기업가 정신 #1. 아산 정주영 회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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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좌절스러웠던 일들이 나중에 지나고 나면 축복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최근 우연히 읽게 된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읽으며, 저는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했고, 또 애국심이 어떻게 한 기업을 일궈 나갔는지 알게 되었어요. 오늘은 아이들에게 풀어둘 이야기보따리 중 하나로 정주영 회장의 일화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1. 학교교육 없이 탄생한 대단한 발명가 정주영

그는 기업가이기도 했지만, 발명가기도 했습니다.

한 일화가 있습니다. 현대건설이 당시 수주했던 주벨 산업항 건설공사 때 필요한 기둥이 16만 개였다고 합니다. 하루 200개씩 16만 개를 만들려면 800일 동안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너무 답답해서 현장에 가보니, 믹서 트럭의 콘크리트를 직접 거푸집에 쏟아붓지 않고, 사람이 크레인 버킷으로 일일이 퍼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직접 믹스 트럭에서 쏟아부었으면 더 빨리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하고 있냐 물었더니, 미스터 트럭의 콘크리트 출구와 거푸집 높이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여기에 매우 분노하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꼬집었다고 합니다. 트럭의 콘크리트 출구 높이를 개조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번거로운 크레인도 필요 없고, 작업 시간도 단축되고, 불필요한 인력 낭비도 없앨 수 있잖아요! 믹스트럭이 완제품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렇게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됩니다. 발명된 믹스트럭은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정주영 회장은 공기 단축이라는 네 글자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비효율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 외에도 바지선에 특수 스크리딩 장치를 부착해서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바닥 정리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궁리를 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노력들을 많이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제대로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으며, 발명과 관련된 어떤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찾으면 나오게 되어 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은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뛰어난 기업가들이 대부분 학교를 중퇴하거나 다니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보면 상식의 테두리라는 것이 학교 교육이 주는 유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뛰어난 발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장애물을 돌파해야지, 비켜가 버릇하다가는 정말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부딪혔을 때도 비켜갈 궁리만 하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러한 불도저 정신이 있었기에 현대 일가가 세워질 수 있었고,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생각하는 그의 노력 덕분에 지금 현재도 있지 않았을까요?

 

2. 누구보다 나라와 사람을 사랑한 사람

그리고 저는 사실 현대가에 대한 편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하여 군부독재의 정경유착의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에서 서술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고 외화를 벌어 나라를 부흥하게 하는 큰 그림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손해도 보아야 하고, 무모한 도전으로 리스크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 애국심, 사명감으로 그냥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는 새벽처럼 일어나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는 노부부를 보면서 삶의 의지를 다졌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해 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울산에 만들어진 조선소는 홍수 피해, 토속신앙 등 수많은 주민들의 반대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섭섭지 않은 만큼의 보상을 해주고, 그 자식들이 더 이상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 않더라도 기업에 입사하게 도왔습니다.  결국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현대조선소는 조선소 자체를 지는 과정과 배를 만드는 과정을 병행함으로써 막대한 외화를 우리나라에 끌어와서 역대 최대의 외화 보유고를 달성하는 데도 기여했죠. 그런 내용에서도 정 회장의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웅산사태를 통해 만들어진 일해재단의 이야기에서도 굳은 심지와 신념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다 나라가 부국강병하게 되어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정주영 회장은 현대 일가를 일구고, 수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현대는 끼니를 잊기 어려울 만큼 가난한 사람,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 학자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빈곤율을 낮추는 데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주위 사람, 우리나라 사람, 동네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이러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창의적인 모험을 감수해 가면서 이런 훌륭한 기업을 만드는 그런 기업인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속에 담긴 기업가정신은 무슨 신념을 무슨 일이든 신념을 갖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목적의식이 바탕해야 합니다. 정주영 회장은 강한 소신을 갖고 결행하는 어마무시한 실천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이러한 실천력과 강한 모범 정신, 도전 정신이 기업가 정신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꼭 전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의 아들에서 그가 해냈던 많은 업적, 사상과 사랑은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는 이런 기업가정신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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