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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론

융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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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자들은 개념을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비유기적이고 전체 총체성의 관점에서 봅니다. 개념은 부분들을 다 끌어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국지적인 정체성에 불과하고 다른 진화의 논리를 따르는 부분들에 의존해서 국지적인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개념의 중심은 하나가 아니고 다양합니다. 이렇게 과거와는 대단히 다른 형태의 그런 이미지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빛의 속도로 확장되어 가는 정보, 과학적 지식의 세계를 생각할 때 그런 식의 유기적으로 잘 조직화되고 조화로운 형태의 그런 체계 이미지를 대신해서 나오는 그런 기괴한 체계의 개념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문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전문화의 단계에 들어갔으며 또 이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론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이론과 관찰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관찰은 언제나 이론, 기술적 조건에 의해 제약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이나 실험과 독립된 순수한 관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객관적 실제가 그러니까 없다는 거죠. 마음과 독립된 객관 세계의 궁극적 구조를 재현하는 단 하나의 참된 이론 같은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경험적 실제는 언제나 복수의 이론적 해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한 이론에서 다른 이론으로 전환이 일어날 때 지식은 누적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체되는 것뿐입니다. 모든 이론을 관통하면서 변하지 않는 관찰 명제의 의미나 내용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이론들 간의 우열을 가릴 절대적 기준은 없다. 이론의 평가와 변화는 객관적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 환경에 속하는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제 문제는 하나의 체계적 지식을 어떻게 근거 지우느냐 정당하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 다른 체계를 횡단해서 그 사이에 어떤 도식을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가 됩니다.

 

 

융합의 도식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서울대학교의 김성환 교수는 융합을 서사의 힘을 통해서만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즉 탁월한 이야기일수록 복수의 계열을 순환하는 망을 구축하고 그런 가운데 어떤 통합적 도식을 산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과거와 연속적이고 동일한 추세 속에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결코 이야기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은 형이상학적 서사나 정치적 서사 같은 큰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과학이 스스로 자신의 기초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원래 이야기와 갈등 관계에 있다. 과학적 기준에서 볼 때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화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과학이 유용한 규칙 적합성을 발현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면서 과학은 자신의 개인의 규칙을 스스로 정당화해야 된다." 그래서 정당화 철학이라는 정당화 담론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인간의 정신은 처음부터 이런 논증과 서사, 두 가지 지향성을 통해 사물과 관계한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이런 두 가지 얽힘을 이해하는 것이 융합의 도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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