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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초등학교 1학년 교사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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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스물두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를 뒤로 한 채, 이 세상을 등진 한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도저히 잠에 들 수 없는 밤입니다.
 
내일 그 초등학교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검은색 마스크와 포스트잇, 네임펜, 그리고 국화꽃을 들고 교문 앞에 추모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870180

[단독]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실서 1학년 교사 극단적 선택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1학년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1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초구 소재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해당 교사는 저연차에 속

n.news.naver.com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 익숙지 않지만, 2000년생인 이 선생님의 슬픈 사연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올해 처음 발령받아온 학교에서 1학년을 맡은 선생님.
다수의  학부모는 담임을 괴롭히면서 이러한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내 자식이 화장실 가는 거 수시로 체크해서 알려라."
"자리는 어디에 앉혀라."
"내 집안이 어느 정도나 대단한지 아느냐?"
교육청, 학교, 동료 교사 어느 누구도 선생님의 편이 되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학폭 때문에 양쪽 학부모에게 시달리다가 교육청에 다녀온 어느 날, 이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셔야 했나 봅니다.
아마도 정말 살고 싶으셨겠지만 살 수 없도록 괴로운 어떤 상황이 있었겠죠.
학교는 그런 선생님의 선택이 있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들을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규를 그 반에 보내야 했지만, 그 신규 선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학부모의 괴롭힘이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오기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그런데 나의 말 한마디가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진정 자기 아이를 원하는 자기 아이를 위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특히 서울 모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의 어처구니없는 민원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가 전학을 와서 정사각형으로 된 신발장 밖에 있는 칸에 신발을 두어야 하는데, 이것이 아이한테 차별을 야기하지 않느냐? 하면서 신발장의 구조를 바꿀 것을 학교장에게 건의하는가 하면, 선생님이 훈육 때 큰 소리 한번 낸 것으로 아동학대 고소장을 날립니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최근에는 완벽한 익명 시스템인 국민 신문고를 이용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학부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반을 아이들 요구에 맞게 바꿔 줄 수 있다고 부추겨, 내 아이의 친구 반과 같은 반을 하게 해 달라는 민원이 수시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 참 편하게 자라네요.
이 아이가 커서 자기가 친하지 않은, 혹은 자기가 어려운 직장 상사를 만났을 때는요? 짜증 나는 배우자랑 살게 되면요?
그땐 누구한테 가서 상사를 바꿔달라고 할까요? 누구한테 배우자를 바꿔달라고 할까요?
자신의 부모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이 작은 사회를 보며 자란 아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 아이는 어떤 좌절감을 느낄까요?
우리가 수많은 벽에 부딪히며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그 벽을 스스로 깨우고 나오는 힘을 기르기 위함인데요. 그 힘을 부모가 빼앗고 있다는 걸 왜 모를까요?
 
이전 포스팅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가 외치고 있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최소한의 규칙과 되는 것, 그리고 안 되는 것 사이에 간극을 충분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3.05.27 - [교단일기] - 아이들의 감정만을 우선하는 것이 진짜 교육인가?

아이들의 감정만을 우선하는 것이 진짜 교육인가?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수천번 흔들린다.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자라기도 하고, 뿌리가 썩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누군가는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큰 나무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

schoolforkids.tistory.com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에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관대하고, 타인의 행동에만 민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내로남불이죠. 자기의 행동이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트라우마까지 유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어떠한 체벌이나 제재를 할 수 없어요! 그놈의 아동학대 법은 무고죄도 없단 말입니다.
 
아이의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어요. 즉시 개입이라는 게 불가능해요. 저학년 아이들은 행동이 발생했을 때 바로 개입해서 얘기해야 행동 수정이 되는데. 그러면 아이들 앞에서 혼낸다고 아동학대라고요. 손만 붙잡아도 아동학대예요. 10년 전 일로 고소하는 학생도 있어요. 대개 무혐의로 끝나죠. 
 
또 최근에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단편적인 정보를 이용해, 학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훈육마저도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 무감정한 교사로 낙인을 찍는데 이용하고 있죠.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학부모의 이러한 요구에 당황스럽고 힘이 들 텐데, 사회적인 위압과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협박에 가까운 부담을 주었으니, 그 어린 청년은 얼마나 견디기가 힘들었을까요?
 
선배로서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이 무력감이 저를 정말 괴롭게 합니다.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고 제가 저희 반 수업을 잘하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우리 교사들이 대한민국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요.
오늘 또 한 떨기 꽃같이 젊은 청년의 애달픈 희생을 보고 나니 과연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길을 선생님들이 다 떠나버리면 뭐가 남나요?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교직을 탈출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무엇 때문에 떠나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도 이렇게 등지게 되는지 이제는 들어줘야 되지 않을까요?
 
본질에는 변화한 사회 분위기도 있지만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동학대법이 가정에서 적용되지 않고 학교에서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인이 사건처럼, 우리가 볼 수 없는 가정에서 학대받던 아이들을 위한 법이었잖아요. 분명히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생긴 거였잖아요. 이게 평범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발생시켜도 되는 악법으로 변질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아동학대법이 학교에서 애꿎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교육권을 얼마나 침해하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걸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거나 합의금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단순한 교육권 침해와 권위뿐만 아니라 반 전체 학생들의 정서적인 안녕과 정상적인 성장을 위한 것임을 천명해야 할 것입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아동들이 제대로 훈육이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어떠한 어른이 되는지 우리는 연일 신문기사 등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강화된 학생 인권으로 인해 그동안의 교육이 얼마나 병들고 나약해져 있는지에 대해 어른들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교사들의 정서 노동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않는,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무사 안일한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저는 오늘 이 소식을 아마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일로 인해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며, 진정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더 이상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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