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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학급 임원 선거에 대한 작은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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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의 첫날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보통 두 번째 날은 학급 임원을 뽑는 날이다. 역시나 우리 아이들은 마치 겨울방학부터 준비했다는 듯이 임원 선거에 대한 안내를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공약 발표

아이들은 저마다 집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거나, 아니면 혼자서 나름대로 여러 고민도 하며 쓴 흔적이 가득한 임원 소감 연설문을 들고 왔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임원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어제 그토록 보스와 리더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섬기는 리더십에 대해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연유에서인지 사뭇 비장한 얼굴도 보였다. 

소감 발표에서는 공약이 쏟아졌다. 담임 선생님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아이들은 각자가 꿈꾸는 교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너무나 긴장해서 손을 바들바들 떠는 아이도 있었고, 어디 웅변 학원이라도 다닌 건지 당당하고 위세 있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감동시킨 친구도 있었다.

 

선거와 개표

이어진 선거에서 결국 성패는 달라졌다. 말을 잘하고 평소 아이들에게 신뢰가 두텁고 리더십이 있다고 느껴지는 아이들이 임원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듯 당선되어 박수갈채를 받는 1등 아이보다 도전에 실패한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도 있던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2등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헬지'라는 오명을 견뎌가며 꾸역꾸역 휴대폰 사업을 이어가던 LG의 폰을 20대 내내 썼었다. 친구들은 20대는 무조건 아이폰을 쓰는 거 아니냐며 놀리고는 했다. 나는 그들의 비웃음에 코웃음 치며 LG는 벽돌폰이라서 좋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1등이라는 걸 깨닫고, 삼성폰을 구입한 것은 30대 줄에 들어서였다.

나는 LG 휴대폰 사업부가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체감했다. 어쩌면 경제 교육을 하는 내가 2등을 강조하는 게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적합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의 논리로 교육을 바라볼 수는 없다.

 

왜냐면 교육에는 LG와 삼성이 없으니까.  임원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씨름하고 머리를 싸맸을 아이들의 그 노력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언젠가는 잡스도 되고, 이건희도 되지만, 평범한 가장에 회사원이 되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이 노력이 묻히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 다시 도전 같은 건 안 해!! 외치면서 이불속으로 우리 아이들이 들어가 버리면 어쩌나. 

 

미당선자에 대한 응원 발표

당선된 아이들의 소감 발표를 듣기 전에, 나는 당선되지 않은 아이들을 응원하는 아이들의 발표를 듣는다.

한 학생당 3명의 아이들이 응원하고 칭찬해야 한다. 칭찬을 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하도록 지시했다.

특히나 우리 학교는 부회장의 학급, 부회장이 정교 임원 선거에 나갈 수 없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거나, 그나마도 떨어진 학생은 부회장을 스펙으로 생각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임원을 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 아닌가?

남 앞에 서기가 저렇게 바들바들 떨리고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무릅쓰고라도 도전하겠다는 패기가 있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한가? 완장 하나를 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더군다나 학기 초 아직 서로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어떤 보석인 줄 아는가?

 

교육은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라고 했던가? 나는 아이들이 서로를 칭찬해 주면서 이 칭찬을 양분 삼아 다 같이 공부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어떤 아이는 공약에 준비물 신청서를 넣고, 어떤 아이는 우리 반 하나하나를 별에 비유해서 문학적인 공약 발표를 했다. 어떤 아이는 발표를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전달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발표 전에 신나는 댄스를 추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고 이등의 것이라고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는 물론 당선된 아이들의 자질을 격하시키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할 2등 아이들의 경험이 많이 걱정이 되어서이다.

 

결국 내 철학에 따라, 아이들은 서로 신나게 박수를 쳐주었다. 경쟁에서 벗어나 마음껏 서로를 칭찬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 박수를 너무 쳐서 손에서 불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3월 초 꽃샘추위가 아직 기승이 난 기승인 추운 봄날이지만 우리 반은 그 어떤 여름날보다 뜨겁고 따스했다.

 

칭찬을 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2등인 아이들은 그 아이들 나름대로 격려를 받고, 투표한 아이들은 1등만 기억하지 않고, 2등에게서도, 3등에게서도, 4등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꼭꼭 씹어 소화하고 뼈와 살이 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전근 간 학교에서는 저번 학교에서보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라도 우리 반 안에 소외된 아이가 없도록, 또 마음을 다치고 도전을 포기하는 아이가 없도록 여러모로 고민하는 한 해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 엄마가 되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애도 낳아보지 않은 처녀가 무슨 말이겠냐 하겠지만, 그런 마음으로 학교에서 생활하면 내가 행복하다. 내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우리 딸,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정을 주고 사랑을 쏟다 보면 얘네들이 커가는 게 그렇게 큰 보람일 수가 없다. 교사에게 있어 보람이란 보약과도 같은 존재이다. 어떤 한의원의 보약보다 아이들이 내게 해주는 따뜻한 말이 보약이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올지라도 내가 했던 말과 내가 한 행동은 이 아이들의 뇌리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오늘의 학급 임원 선거가 아이들에게 희망해 도전기가 되길 바란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가 아니라 칭찬만 기억하는 도전의 사회가 되길 바란다. 어쩌면 학생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내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학생의 수가 더 늘어났다는 점이기도 하다. 동시에 내 잘못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다. 자기 검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올 한 해 매 수업에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최선을 다해 좋은 것을 주고,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학부모님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늘 진심을 알아주니까?🤣

오늘도 나는 귀한 보약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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