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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수업 중 여교사 몰카, 교사 교권 하락 사태에 대한 질문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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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소식이다. 중학생이 교실에서 웃통을 벗고, 교사를 촬영한 장면이 업로드된 것이다. 아무리 교권이 추락했다고 한들,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런 학생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1. 교사는 기본적으로 어떤 직업인가?

나는 주변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엔 영어 알파벳을 외우지 못했으며, 수학을 어려워했다. 금융지식이 없어, 지난 코인 폭락장에서 손해를 보기도 했다. 부족한 교사이자, 부족한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는 옳지 않은 것, 더 가르쳐 주고 싶은 것에 욕심을 내고 이것을 콘텐츠로 만드는 데 심혈을 쏟는다. 

내가 정리를 잘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책상 정리를 잘 못하는 아이들에겐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르쳐주지 않으면 습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나처럼 고치려 하면 아이가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주변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반 전체에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지적하고 가르쳐야 한다. 

자기 주변을 자기가 청소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청소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내 방을 자주 청소해주셨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청소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역시 아이의 부모님이 이 아이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청소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는 어쩌다 보면 방대하게 늘어난다.

금방 달라질 수는 없지만 글씨체도 교정해주어야 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 고쳐줄 수가 있을까?

글씨를 고치는 게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는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어야 한다. 또박또박 쓸 수 있게 강조한 교사들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고치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압박 안 하면, 누가 가르쳐주나? 애들은 언제 달라지나? 컴퓨터 시대이지만, 글씨를 쓰는 건 아이들의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인상을 드러내는 하나의 소통 도구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21.04.24 - [창체 교육] -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꼭 악필을 고쳐야 하는 이유- 글씨체 교정의 3대 원리 & 학습지 &교육용 동영상 공개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꼭 악필을 고쳐야 하는 이유- 글씨체 교정의 3대 원리 & 학습지 &교육용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경필체라는 것을 썼습니다. 그때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살아가면서 내 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며, 그때 바른 글씨가 큰 도움이 될 것이

schoolforkids.tistory.com

 

2. 교사를 바라보는 편향적 시선은 왜 생겼을까?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오*영 박사가 최근 낸 책을 읽다가, 충격적인 표현에 할 말을 잃었다. 

과연 학교 현장을 이해하고 쓴 책인지, 본인이 쓰신 책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교사들은 사회적인 통념을 가르치고, 그 아이의 평생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책에 언급된 교사들은 '지우개 가루가 바닥에 떨어져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규제하는 교사', '체육시간에 공을 줄 때도 경쟁을 시키는 들볶는 교사', '차분하고 조용해서 경쟁적인 스타일의 아이를 미워하는 교사'로 묘사된다. 교사와 반대 성향의 아이는 교사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당연한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 분은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 건강의 전문가일지는 모르지만, 교육의 전문가로는 보이지 않는다.  금세 달라질 수 없기에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는 교육의 기본 원리를 알면서도 모순적으로 부정하는 것 아닌가?

 

'학기가 얼마 안 남았으면 좀 참는데, 교감이나 교장을 찾아가 보도록 하게요. 그리고 아이가 너무 예민한 편이니, 그다음 해에 담임교사를 배정할 때 고려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교장이나 교감이 봤을 때, 그 아이와 덜 부딪힐만한 교사를 골라(!!!) 배정해줄 거예요..'라는 대목에는 충격을 느꼈다. 

 

교사는 자신의 성향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 아이의 수준에 맞춰 평균적인 수준을 가르치고자 한다. 

자신의 성향과 단점을 보완해가며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의 교사 경험을 확대하여 모든 교사들이 그런 것처럼 당당하게 써놓고, 그것을 요구하도록 당당하게 행정적인 조치를 유도하는 이 글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깔끔한 선생님, 조용한 선생님, 경쟁위주로 활동을 유도하는 선생님, 모두 아이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인간 군상의 하나일 뿐이다. 그들과 신뢰관계를 쌓으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생각을 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겠다? 그러면 아이의 적응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같아 보여도, 결과론적으로는 아이에게 결코 좋을 것이 없다. 과연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지금은 가르칠 것은 따끔하게 지도하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부드럽게 지도하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모르는 사회적인 합의가 짙게 깔려있다. 폭력교사,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교사, 아니면 촌지교사. 

 

나는 이러한 현상의 상당 부분이 지난 세대 학급당 학생수가 지나치게 많았던 것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월급이 박봉 중의 박봉이라, 일부는 촌지를 받아 생활했다는 전설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기. 걸레 밀대로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맞아야 했던 시기. 군부 독재라는 폭력 정권이 정당화되었기에, 학교에서의 폭력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조그만 교실에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애정을 갈구했다. 당연히 교사의 세심한 지도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 당시에는 체벌이 만연한 시기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상처를 받은 학생들이 많았다. 그랬던 그들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고자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조차도 선생님에게 맞은 적 있으니까. 🤔 그러나 그때의, 20~30년 전 어린 학생들이 이제는 커서 자신의 상흔을 지금의 교사들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다. 마치 그때 갈구했던 교사로부터의 따뜻한 애정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살을 맞는 건, 지금 현장에서 열심히 애쓰고 있는 교사들이다. 특히 2030 교사들은 연 1%의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에, 학부모의 온갖 민원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학교의 모든 잡무란 잡무는 맡아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렸다. 아이들이 건네는 사탕 하나에도 벌벌 떨며, 아이들의 예쁜 그 눈망울을 외면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온갖 성직자관으로서의 의무는 다 해야 하는 시대에서 하루하루 열정을 잃어가는 후배들도 보인다. 

 

 

3. 교권 추락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런 사회의 시류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은 개인인 나에게는 없다. 하루아침에 내가 교권 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 수도 없고, 교사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가진 일반인과 학부모에게 읍소하며 1인 시위를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초등학교 교사란 방학을 맞아 여행이나 다니는 꿀 빠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수업을 열심히 하고,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이 블로그에 올린다고 해서 내게 어떤 경제적 이익이 눈에 띄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연봉을 획기적으로 협상하여 조정할 수도 없고, 국민이 올린 민원은 처리해야 하는 일개 공무원인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2030 세대의 연금은 이전의 공무원 연금과 다르게 정말 개악되었기 때문에, 월 100만 원도 되지 못하는 연금을 기대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인구 절벽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매우 암울한 전망만이 존재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그러나, 구조를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개인은 구조에 소속되어 있고, 자신의 행위자성(agency)을 발휘하여 조금씩 조직에 기여할 수는 있다. 누가 이 '취업사기'라 불리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떠민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이 갖는 가치를 믿기 때문에 교사가 되기로 나 스스로 혼자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또 이 직업이 갖는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경제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내가 이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만큼 따라오는 게 경제적인 보상이라는 게 순서에 더 적합하다. 경제적 목적이 주가 되려면, 당장 사직서 내고 나가는 게 우월 전략이다. 

그렇지만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좋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해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수업하는 과정에서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유를 고마워하고, 나누어서 더 발전시켜주는 동료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이렇게 쓰면, 정말 오글거리긴 하다. 그렇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나는 꾸준하게 계속 에듀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성과(교육에서 성과를 논의한다는 게 우습지만)를 내기 위한 교육 자료도 꾸준히 만들고 있다. 그걸 위해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각종 자료 제작과 프로젝트에도 몸이 부셔 저라 참여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만족했다는 강의평을 들으면, 그 강의 준비에 들인 노력이 씻은 듯 사라진다. 이렇게 교사들이 만든 콘텐츠가 쌓이고 쌓이면, 아이들이 바뀌고 교육이, 교육청, 교육부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 굳게 믿는다.  앞으로는 콘텐츠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 세계의 어느 교사 인력풀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부디 우리 동료 선생님들과 후배들이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그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하노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지금의 교권 추락을 보고만 있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럴 것이라 믿는다.  

 

요즘의 사태를 보노라면, 나의 이런 믿음이 너무나 순진한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나는 때도 있다. 하루라도 fire 해서 자본을 축적하고, 우리 일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게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버렸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순진한 믿음이 교직 생활 내내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건, 나 외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부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을 대충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의 성찰이 앞으로의 내가 힘이 들 때에도 버팀목이 되어주는 작은 쉼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모든 전국의 선생님들에게 힘과 사랑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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