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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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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육과정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교육과정에 과학을 넣어야 하는 매우 확실하고 뚜렷한 정당성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종류의 과학을 가르쳐야 할까요.

또 어떤 방법으로 과학을 가르쳐야 할까요? 이것은 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정당성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과학 교육의 역사적 근거를 살펴보면서 이 과학 교육의 정당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과학을 가르쳐야 할 이유 

과학을 가르쳐야 할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이 미래 세대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 지식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은 지난 100년 동안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우리 교육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고대어라든지 고대 문학 등은 현대 생활과는 유리된 것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연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반면 수학은 수백 년 동안 필수적인 지식이었고, 어느 학교에서든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과학은 수학과 비슷하게 지적 발달, 미적 즐거움, 개인적 만족, 경제 개발, 물리적 세계에 대한 지식의 확장과 관계가 있는 과목입니다.

 

19세기에 과학 지식은 인간의 경제적 번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과학 학습은 관찰력과 귀납적 추론의 개발에도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20세기 초반의 과학 학습은 점점 증가하는 산업화된 세계에서의 효과적인 삶과 적응, 산업, 경제개발, 공중보건의 유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1950년 중반부터 1960년 후반까지는 과학 학습이 국가 안보, 국가의 위상과 관련한 최첨단 지식을 가진 과학자의 육성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경제 발달뿐 아니라, 추론적 사고 창의적 사고 등이 각광받은 지 오래입니다.

 

 

2. 과학 지식의 과정과 결과의 측면

모든 영역의 학문은 지식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고 그에 따라 발생되는 지식의 체계가 있습니다.

그 과정 그리고 산물은 모두 학교 교육 과정에서 학문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목에서는 어느 하나에만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미술과 음악은 산물보다는 과정을 가르칩니다. 오케스트라, 합창 등을 통하여 학생들은 음악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미술과 음악을 가르치는 목적이 미술가와 음악가를 기르려는 것과는 별개로, 학교의 음악과 미술은 그 활동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반대로 수학은 그 학문의 과정에 관심을 갖는 학교도 있지만 결과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경우는 다른 과목보다 과정과 산출 모두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실험실과 강의실이 과학 과정과 산출을 함께 제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의 강점임과 동시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1) 과학의 과정

우선 과학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과정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논리적 과정과 기술적 과정입니다.

우선 논리적 과정이란 체계적인 관찰, 통제, 실험 수행, 귀납적, 연역적 추리로 결론에 도달하기 등을 포함합니다. 

반대로 기술적 과정이란, 현미경 사용, 전자제품 작동, 물건의 무게 재기 등등을 다룹니다.

이때 논리적 과정이란 과정의 학문으로서 과학 교육은 실험 기구와 과학 물품을 다루는데 어느 정도까지 유능한 학생을 기를 것인가와 동시에 과학의 논리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 어느 정도까지 유능한 학생이냐, 또 그 과정에서의 지식을 어느 정도까지 갖는 학생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수학 같은 경우는 경제 과학 사회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적용과는 거리가 먼 조직적 지식 체계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순수한 학문이기도 하고, 기술적 적용과 관련지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2) 과학 지식의 결과와, 과학 교수에 대한 세 가지 해석

따라서 과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의미하느냐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첫째, 논리적으로 조직된 과목으로서 학습해야 할 구조화된 지식으로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

둘째, 일련의 탐구 과정으로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

셋째, 기술적 적용과 사회의 안위에 밀접히 관련한 인간 활동으로서의 과학을 가르치는 것

이러한 세 가지 해석은 순수하게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접근이나 다른 접근을 강조하거나 덜 강조하면서 복합적으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이 셋 중에서 구조화된 지식으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과학 교육의 지배적이었습니다. 

세 가지 접근은 각각의 역사적 맥락에서 고려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과학을 포함시키는 초기 정당화 중 하나는 자연 세계의 흥미를 갖는 모든 사람들에게 과학 교수를 통하여 자연 세계를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흥미를 가지고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해 알기를 원합니다. 교육은 이 과정을 도울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은 1867년에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보편적으로 흥미를 가지는 우주의 사실을 학습하는 지적 과정에 참여하게 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우리에게 봉합한 책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교육에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스펜서는 과학 교수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학 교수는 아이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생계를 세우고 기억력을 향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 훈육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3. 과학 학습의 사회적 유용성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과학 학습은 주로 사회적 유용성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습니다.

과학 지식이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되고 국민 건강의 개선에 필요할 뿐 아니라, 점점 더 산업화된 세계에서 더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시민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과학 학습은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제 전략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과학 교수 내용의 사회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과학 교수의 효과에 대해서는 잊힌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어떤 실용적 목적을 가졌다기보다는 그 자체로 과학 자신을 위한 과학 교수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과학 내용을 학습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들은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목적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목적들은 너무나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과학 학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이처럼 과학은 학생들의 기억력 발달, 사실적 지식의 검사 등의 개인적 목적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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