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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이의 평생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교사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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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어디일까요? 어두컴컴한 골목길일 수도 있고 놀이터일 수도 있겠네요. 가정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교실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나는 담임 선생님은 보통 한 분인데요. 이분들에게 아이들은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영향은 그 1년의 시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평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교사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서 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해보려고 합니다.

 

1. 이헌주 연세대 교수의 이야기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헌주라는 분은 인생의 귀인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어떠한 재능도 찾지 못했다고 해요.

그저 말도 없고 숫기도 없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 아이를 완전 다른 아이로 탈바꿈시켰다고 해요.

방과 후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퇴근길에 이 아이에게 격려하는 말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넌 성실하니까 학자가 될 거야. 선생님이 학기말에 선물을 줄게."

 

이 아이는 학기 말에 선생님이 주시겠다고 한 선물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남은 1년을 보냈습니다.

그 선물을 받자마자 이불속에 고이 들고 간 이 아이. 포장을 뜯어보면서 엄청나게 설레었다고 하는데요. 그 선물은 다름 아닌 표준 새 국어사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를 받고 교수가 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의 시기는 모든 이가 거쳐야 하는 시기이며, 그만큼 영향을 받기도 쉬운 시기인 것 같아요. 교육 지원청 차원에서도 키다리 샘이라든지 희망교실 등으로 교사와 학생의 1대 1 멘토링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요. 30명이 넘는 아이들과의 인격적 만남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도의 압박, 학교의 잡무 이런 것들 가운데에서 아이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지요.

 

기회가 닿는 대로 제가 이 멘토링은 해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어쩌면 제가 해주는 활동 하나, 선물 하나, 눈 마주침 하나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헌주 교수의 이 경험담은 그동안의 제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https://youtu.be/7lxF5kAdSTo

 

2. 탈옥수 신창원의 이야기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가 강의 때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가 신창원의 일화입니다. 신창원은 그 특유의 패션과 역대급 탈주 능력으로 크게 유명세를 탔는데요.

신창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한마디 때문에 자기 속에서 악마가 태어났다는 표현을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응원해 주고 지켜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이런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 같은 것이지요. 

 

신창원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살림살이가 힘들어서 밭에서 서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 육성회비를 냈어야 하는 시절인데요. 선생님이 가난한 신창원을 무시하면서 욕을 했고,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부터 가출을 감행하였고 학교 생활에서도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선생님의 말 한마디 때문에 범죄자가 되었다는 설명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신창원은 교사 폭력, 언어폭력 외에도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족의 죽음, 가난 등을 겪었고, 이 교사의 말이 신창원이 저지른 범죄에 면죄부를 주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창원이 지금까지 보였던 그런 범죄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창원의 신체적 능력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신창원은 가스총을 눈 밑과 머리에 맞았으면서도 13번이나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를 했습니다. 검도 유단자 출신 경찰이 휘두른 스파이프도 팔목으로 막으면서 방어를 했답니다. 이 뛰어난 운동 신경을 발굴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시스템이나 어른이 있었다면? 초등학교 교사가 이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체육을 시킬 수 있었다면?

어쩌면 신창원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운동선수가 되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탈옥수나 범죄자를 미워하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을 가진 가능성을 열린 상태로 바라봐주고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는 역할을 부모가 못해준다면, 적어도 다른 어른인 학교의 선생님이라도요. 

 

3. 시골의사 박경철의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알려진 시골 의사 박형철의 이야기입니다. 딸과 아들을 가진 어느 40대 여성은 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안동의 대학병원에서 당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던 박경철 의사는 부모, 엄마의 죽음을 목전에 둔 두 아이를 데려다가 라면을 먹였답니다. 하도 인턴생활이 바쁘니, 자기도 끼니를 때울 겸 아이들도 먹였던 것이지요. 당시에만 해도 병원에서 밥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기에 순수하지만 않은 의도였을 수도 있겠죠. 

 

그 라면을 먹는 15분여의 시간 동안 박경철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희 입장에서는 가혹하고 힘들겠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남겨진 아이들이 혹시나 잘못하면 어떡할까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너희는 그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그러고는 그 40대 엄마는 돌아가시고, 세상에는 두 오누이만 남겨졌다고 해요. 박경철 스스로도 그 말을 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지요. 나중에 한 신부님이 와서 말해주기 전까지요.

 

컵라면을 먹으면서 해 준 어느 의사의 따뜻한 말은 남겨진 오누이가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동생은 선생님, 오빠는 신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15분이 아이들을 삐뚤어지지 않게 해 준 울타리가 된 것이겠죠. 

 

박형철 의사는 영향력이 크기보다는 선한 것이냐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비단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가끔 제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 때, 저도 모르게 보상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물질적 보상이라기보다는, 정신적 보상을 추구하는 편인데요. 제 시간, 인사이트를 얻어간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란다거나, 말이라도 제 공치사를 해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제 모습을 아이들이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 배려를 내 나름대로 해놓고,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남들이 저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제가 먼저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가 아닌 것 같아요. 주고도 주었다는 자각, 의식이 없어야 하는데 그득그득 의식하고 있으니까요. 아직은 수준 높은 나눔이나, 수준 높은 선한 영향력이 되지는 못한 것이지요. 선한 영향력,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자각마저도 잊고 살아갈 때, 그 영향력은 더욱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요. 도움을 받는 사람이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내가 한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역으로 나쁜 영향력도 그런 것이겠지만요. 

 

과연 내 입에서 나간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추하게 됩니다. 특히나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 이 중요한 시기를 매일 함께 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부족했지만, 한 뼘 더 성장하려고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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