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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레벨 테스트 시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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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원래도 가만히 놓아두면 잘 논다. 나뭇가지 하나만 쥐어줘도 재미있게 논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고, 스치는 바람에도 간질간질하다며 웃어제낀다. 

 

대치동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은 물론, 만 두 돌 때부터 사교육이 시작된다. 요즘 한창 레벨테스트가 유행인 것 같다.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레벨테스트, 일명 레테. 이를 위한 학원이 있다. 

막상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부모가 챙겨야 할 건 더 많아진다. 레벨테스트와 학원 찾기는 기나긴 사교육 여행의 첫 발자국일 뿐이다.

아이가 입학하면 휴직하는 엄마도 많다. 친구의 무리를 만들어주고, 엄마들끼리도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많은 걸 배운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는 물론이고, 예체능에 각종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까지 듣는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진짜로 중요하게 갖추어 나가야 하는 게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레벨테스트를 시키고 , 정작 아이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때가 아닐까. 

 

나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세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즐겁게 사는 법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까? 왜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이며, 정신건강의학과는 연일 환자들로 넘쳐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즐겁게 사는 어른을 보기가 참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힘들어서 옷을 대충 걸어두고 소파에 널브러져서, 주말 내내 스마트폰을 보며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부모님. 

계속 뜨는 메시지 알람과, 행정업무의 부담,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아이들 모두에게 애정을 주고 싶어도, 지쳐버린 사람. 소진된 나머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교사.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굳은 표정들의 어른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닌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더더욱 아이들을 보며 많이 웃어주려 한다.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내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행복한 모습을 나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즐겁게 사는 누군가를 보고 자란다면, 아이들도 인생이 즐겁고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2. 친구와 싸우며 사는 법

아이들의 본성에 맞게 즐겁게 또 지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특히 고학년 여학생들에게 발생하는 일이다. 무리 짓기가 발견된다. 또래집단이 갖는 의미가 너무 커져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부모나 교사의 인정 따위는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오로지 내 집단에서 내가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맞지 않으면 서로 험담도 하고, 이간질도 하고, 편 가르기도 한다. 어른들의 정치판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아주 귀엽게 일어난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귀여운 거지, 아이들 세계에서는 죽고 사는 문제에 가깝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쌓아둔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회를 주고, 경고를 한다. 그러다 빵 하고 터진다. 

누군가는 카톡으로 싸우고, 어떤 집단에서는 얼굴 보고 싸우고, 쪽지를 주고받거나, 심하면 주먹질을 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가면 이런 싸움에 대한 학습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인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면, 어떤 피해를 입는지도 대충 감이 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기고, 그 서열 안에 스스로 들어가기를 자처한다. 싸움이 일어나면 크게 일어난다. 사실 그렇게 보면 자잘한 싸움은 초등학교에서 더 수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저학년 교사들은 학생들의 수백 번 가까운 고자질에 노출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하나 다 싸움이고 스트레스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친구와 싸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 

 

 

3. 친구와 함께 사는 법

의사소통 기술, 이제는 교육과정 곳곳에, 전 과목의 총론과 각론에 포진한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기술이다. 

협업 기술과 의사소통 기술은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정말 필수적인가 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이 기술을 기를 수 있도록 교사가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으라는 배려의 일환이다.  그래야 효과적인 모둠 구성이 가능하고, 아이들끼리 소통도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코로나 직후 아이들의 모둠 활동을 지켜보면서,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모둠별로 함께 해야 하는 수학 문제를 20문제 주었는데, 문제를 4조각 내어서 5문제씩 따로 풀고 있는 거다. 서로 칸막이를 쳐놓았던 그 문화 그대로, 아이들의 대화 또한 막혀 있었다. 모둠원끼리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더라. 

 

그러던 아이들이 이제 학년 말을 향해 가니, 제법 자기들끼리 잘 뭉친다. 

물론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있었지만, 그 사건들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했다. 지금 모둠 과제를 주면 곧잘 한다. 나름대로 역할 배분을 한다. 모둠 안에는 리더도 있고, 팔로워도 있고, 감시자도 있고, 서기도 있다. 모든 게 착착착 진행된다.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함께, 즐겁게 사는 법을 초등학교에서 배운다. 솔직히 교과 지식이 그렇게 초등학교에서 중요한가?

나는 위의 기술한 세 가지가 지금의 교과지식이 갖는 유용성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 블로그든, 유튜브든 정말 잡다한 영역과 콘텐츠 유형을 넘나드는 이유이다. 점을 무수히 많이 찍다 보면, 선이 되지 않을까?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하면 잘 ,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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