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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교육

크리에이터로서의 교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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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부캐가 있습니다. 올라피샘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한국 교사 크리에이터 협회에 소속되어 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똑똑한 두뇌를 가져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사람을 좋아합니다. 만나는 인연에 감사하고, 겸손하고 최선을 다했더니 인복이 되더라고요. 그 인복 덕분에 제 능력에 과분한 일들도 감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에게 사람들이 왜 너는 이렇게 콘텐츠를 만드냐고 묻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1.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교육 콘텐츠 크리에이터

처음에는 교사로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임고를 합격했고, 아이들과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받고 나니까, 자꾸 허무한 겁니다. 취업 사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죠.
 
첫 월급을 받았는데 180만 원이더라고요. 요즘 중소기업만 가도 초봉 250만 원은 준다는데, 부끄럽지만 250 넘은 게 최근 일입니다. 노력 대비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니까, 취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매기도 했어요. 연애도 해보고요. 그런데 이 공허함이 채워지지를 않는 거예요. 무기력증이 왔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교대로 왔는데... 어때요? 많은 선생님들께서 공감하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이 무기력증이 정말 엄청납니다. 저는 이 에너지가 어떻게 표출될지 걱정이 됩니다.
 
24시간 중에 8시간을 소모하는 게 직장의 일이잖아요.
근데, 이게 맞나요? 가장 내 마음이 충만해야 될 공간에서 교사들은 고통받아요. 월요병에 시달려요. 선생님들이 아동학대 고소(일명, 아동기분상해죄)에 벌벌 떨어서 제대로 된 지도를 못해요.
 
이게 맞나요?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제는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로 훈육을 마쳐야 해요. 안 그러면 고소장 날아오거든요. 최근에 제 주위에는 10년 전 일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한 선생님도 있어요. 재미있는 게 고소한 학생은 자기가 만난 모든 은사님들을 다 고소했대요.
증거? 그딴 거 물론 없습니다. 본인의 주장밖에 없어요. 교사 고소 전용 중개인도 있답니다. 증언만으로도 고소 가능한 게 아동학대예요. 무고죄도 없어요. 다 무혐의로 나오는데 소송에 대응은 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교사들이 받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아무도 보상 안 해줘요. 죄송하지만, 저는 단언합니다. 이 피해는 사회로 나갈 반 전체의 아이들이 봅니다. 언젠가 이거 사회 문제 전면으로 떠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규율과 훈육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은 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로 끝날 줄 압니다. 은둔형 외톨이,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싹이 보여도 교사들이 입 뻥 긋도 못한다니까요?
큰 목소리만 내도 아동 학대라는데요?
 
이런 상태는 제 인생의 3분의 1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대로 살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직장에서 나에게 충만함을 주는 것을 만들기로요.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제 삶의 이유를요. 나는 왜 이 박봉 직업을 선택했고, 왜 교사 되기를 고수하는지. 내가 가진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 오글거릴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뿌리 없는 나무는 스치는 바람에도 넘어져 버리거든요. 계란 껍데기만 씹어 먹고는, 아 맛있다 ~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파고 파고 심연으로 내려가 보니까, 무릎을 탁 쳤어요. 내 삶은 유한하니까, 내가 이렇게 공허하구나. 이러다 아무것도 못 남기고 죽을까 봐.
제한된 자원 안에서 결과를 추구하려니까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바에야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겨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창조의 욕구가 있더라고요. 내가 죽어서, 내 육신은 없어질지언정. 내가 만든 콘텐츠는 무한하게 영속할 수 있잖아요. 저의 답, 저의 본질, 제 삶의 의미는 무한한 콘텐츠 생산에 있었습니다.
 
 

2. 교사는 최고의 프로슈머다.

코로나 시기 많은 교사들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요. 실제로 교사 탈출을 준비하는 카페가 따로 있습니다. 검색해 보세요.
 
카페 대문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200만 원을 벌래? 월천을 벌래? 당신의 선택은?' 여러분은 이분들 비난할 수 있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인데, 당연한 고민이잖아요. 사명감만으로 200만 원 월급으로 애도 낳고, 키우고, 집도 사야 되는데. 그 알량한 사명감마저도 떨어지는 교권과 소송의 위험성으로 위태롭잖아요. 해야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내가 학교에서 받고 있는 건 최저 시급만도 못해요.
 
그래도 전문가로서, 공무원으로서 교사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요. 나가도 딱히 받아주는 데도 없어요. 다들 반에서 1~2등 하는 인재 아닙니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기하고도 교대 간 선생님들이 차고 넘칩니다. 대한민국 교사의 질은 OECD 최상, 그 어느 나라보다 우수합니다. 
 
저 또한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이게 어디에 있는가?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차명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제 석사 논문의 주인공입니다. 이 선생님이 온갖 루트의 채널을 통해서 동일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교사가 최고의 콘텐츠다'
 
교사, 특히 초등교사는 우리가 국어, 수학, 사회, 영어 모든 과목을 총 망라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거기에 생활지도, 디지털 문해력?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지요. 우리가 가르치는 지식의 수준이 낮고, 넓기만 하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성인은 초등학교 졸업한 지 몇십 년 지났잖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그 애들 수준이 되어서 융합해서, 아이들의 시각에 맞게 떠먹여 주잖아요. 이게 전문성 아닌가요? 전문직으로서 사회에서 인정 안 해주더라도, 전문성 있는 전문가로 살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전문직 되지 않을까요?
 
이유식을 만들더라도 아기들이 먹으면 잘게 쪼개주잖아요. 품이 들잖아요. 아무나 못하잖아요. 소독하고 열탕하고 그 과정이 헛된 게 아니잖아요. 그걸로 아이들이 크잖아요. 그게 바로 초등 교사의 정체성이고, 전문성이거든요. 사회 구조를 우리가 지금 당장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어요. 월급은 쉽게 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사들이 이 엉망진창인 구조에 대해 나름의 절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김차명 선생님의 말에 보태,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교사가 교육에 있어서는 최고의 프로슈머다'
잘 보시면, 사교육계에 있는 일타 강사 선생님들은 자기만의 교재가 있어요.
프로슈머로서의 교사,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걸, 코로나를 통해서 교사들이 깨닫게 된 겁니다. 물론 반은 타의적이긴 한데요. 크리에이터가 된 교사들이 전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정기백선생님 그리고 이종대왕과 같은 교사 크리에이터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창의성과 유용성을 가진 이러한 좋은 교육 콘텐츠들을 자기만의 교실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분들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는 모든 선생님들이 이 마음으로 함께 콘텐츠를 만들 역량이 있다고 생각해요.
 

3. 교직에는 따뜻한 '교직문화'만의 특수성이 있다. 

사실 숨은 고수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드러나지 않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교사들의 위기가 코로나 시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공학이 발전하면서, 교사들이 쓸 수 있는, 아니 '써야 하는' 매체들이 압축된 20년 안에 급속도로 늘어났거든요? 그때마다 이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적응을 완벽하게 해냈어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얘기해 볼게요.
 
교직 1.0 시대: 괘도를 쓰던 낭만의 시대
당시에는 ohp필름을 썼었어요. 화려한 불빛아래, 네임펜으로 쓴 OHP필름을 두고 봤습니다. 그런데 10개 넘는 과목을 혼자서 다 못 만들잖아요. 내가 수학 익힘책 하나 만들면, 우리 반에서만 쓰지 않고 옆반으로 돌렸어요. 전체 학년에 돌려서 같이 썼어요.
 
교직 2.0 시대: 열린 교실
아이들의 눈을 봐야 된다 해서 컴퓨터를 책상에 숨겼어요. 티나라, 아이스크림 이런 사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교사들이 쓸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가르칠게 더 많아졌어요. 소프트웨어 교육과 코딩 교육도 들어와야 된다고 주장해서 실과교육과정 바뀌었어요. 선생님들은 이것들을 또 공부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연수를 들었어요.
이 사람들이 그걸 또 해냅니다.
 
교직 3.0 시대: 다 해라 교실
이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지역화 교육과정, 교사 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해요. 교육과정 재구성하라고 합니다. 에듀테크 기업들이 이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AI, 생태 교육, 경제 교육도 아이들한테 필요해요.
그랬는데, 잠깐만요.
애들 문해력이 떨어집니다. 다문화 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 인성교육 등... 거기에 필수 교육 시수는 늘어납니다.
문제는 이걸 할 수 있게 교권을 보장해 줘야 되는데, 아이들의 인권은 보장되었지만 교사들의 교권은 떨어졌죠? 위에서 말했던 아동학대죄, 아동 기분 상해죄가 이제 교사들을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직 변천사
교직 변천사

 
이런 와중에서 교사들은 그래도 아등바등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과거에 1.0 시대, 2.0 시대를 해낼 수 있었던 건 교직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는 정말 숨은 고수들이 많습니다. 서로를 '자기야'라고 부르면서, (뒤에서는 욕할지언정?) 돕는 문화가 있습니다. 정말 내일처럼 나서 주십니다.
선생님들께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데, 나만 하는 게 아니에요.
쿨 메신저로 쫙 뿌리죠. '제가 해봤는데요. 컵 구울 때 장갑 끼고 하셔야 돼요. 애들 위험하니까 줄 세워야 되어요.' 
학습지랑 PPT 나누면서, '이 수업은 이런 이러이러한 것들이 좋아요.'
준비물까지 반별로 쫙 분류해서 다른 반이 쓸 수 있도록 세팅을 해서 다 나누어 줍니다.
 
바로 그런 고수들이 우리 동학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집단 지성으로 지금까지 해올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직장에서 이거 가능합니까?
내 고과 잘 받아야 되는데, 누가 이런 팁 공짜로 줍니까?
그 어느 직장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온정적인 교직 문화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도생이라는 그 말이 저는 너무 슬퍼요. 이게 우리의 마지막 보루였단 말입니다.
 

4. 크리에이터로서의 교사를 인정한 역사상 최초의 '공적' 플랫폼, 잇다

이 교직문화가 비로소 플랫폼의 힘을 얻었습니다. 바로 케리스, 교육부, 시도교육청이 함께 만든 올해의 채널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2021, 2022, 2023년 연속으로 잇다의 올해의 채널 운영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채널에는 교사가 만든 창의적 콘텐츠를 마음껏 아카이빙 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만든 콘텐츠들이 어디 날아가지 않고, 제 이름이 붙어서 제가 죽어 육신이 썩어 없어질 때까지 데이터 베이스에 유지될 것입니다. 또한 크리에이터를 교사인 크리에이터를 인정해 준 최초의 관주도, '공적' 플랫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교사를 끊임없이 지원하는 공모전이나 각종 전문성 향상을 위한 기회들을 여기저기서 주고 있습니다.
 
언감생심, 이종대왕이나 기백샘 같은 분들과 같은 자리, 같은 화면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되다고 생각하고요. 크리에이터로서의 교사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이 시스템에 감사하면서 저는 이것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올해의 채널로 선정되었을 때 업로드해야 하는 1개월의 의무 콘텐츠 수는 10개예요. 저는 그 한 달에 10개라는 숫자를 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저에게 온 기회이고 내 콘텐츠를 전국에 계신 선생님들께 알릴 수 있는 올해의 채널에 선정되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기뻐서요.
 
20개를 저는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콘텐츠가 엄청 좋은 질이 아닐지언정, 내가 할 수 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보답해 드리자는 마음으로 임해봤습니다. 주말을 기쁘게 반납하고, 방학 때도 정말 기쁘게 일했던 것 같아요. 10개씩 만들고... 또 울다가 엔터 눌러서 올리면 힐링~ 누가 댓글 달아주면 또 힐링~ 일이랑 결혼한 거죠? 그럼 다시 웃고.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여러 기회도 생겼습니다. 작년 올해 2권의 책을 썼고, 2권은 또 출판 예정입니다.
 
이게 저 개인의 노력일까요? 아니요.
저는 선생님의 교직 문화와  플랫폼인  '잇다'의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5. 아직도 건재한 의문, 나는 좋은 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가?

그런데 과연 이게 실제적으로 선생님들한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은 저희 안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빈 수레,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말도 있죠. 선생님들이 이 자료를 열어보시고 뭐야 이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시게 될까 봐 항상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이 콘텐츠를 중심으로 계속 누적해 나가다 보니까요. 적어도 이 수업에 대해서만큼 선생님들한테 할 말이 생겨요. 제 수업 자료들이 도움이 된다는 선생님들의 반응이 옵니다.
 
가장 중요한 우리의 본질. 교사로서의 수업에서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콘텐츠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비로소 저는 제 존재이유, 본질, 창작의 가치를 실현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언제까지 올해의 채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본질이 또다시 위협당할 때, 또 제 안에 공허감이 찾아와 저에게 질문을 할 때에. 저는 과감하게 내려놓을 거예요. 후배 교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제가 느낀 이 충만감을 그들도 누리고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를 지켜왔던 교직 문화는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는 제 공간, 제가 제 생각을 마음껏 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조금은 제 자랑이 많이 섞인 것 같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감사와 겸손 두 가지의 가치로 살아갑니다. 제가 결코 잘나서가 아니고, 이 모든 것이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글을 우연히 읽으신 우리 동료 선생님, 후배 선생님, 선배 선생님도 계시겠지요. 저는 우리가 함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교직 문화를 통해, 함께 충만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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